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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도 할 게 못 되는군...

예천림 2012. 2. 27. 02:11

택배기사 김모씨(39)는 새벽 5시면 집을 나선다. 자신에게 할당된 택배량을 모두 처리하려면 더 일찍 출발해도 모자랄 지경이기 때문이다.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이동해도 할당량을 모두 배송하고 나면 오후 8시를 넘기기 일쑤다. 매일 김씨에게 할당되는 물건은 100개가량 된다.

배송 1건을 완료했을 때 김씨의 손에 쥐여지는 돈은 980원이다. 10년 전에는 건당 1000원씩 받았지만 택배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작년에는 930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0월 열흘간 파업을 한 결과 980원으로 올릴 수 있었다. 김씨는 매일 100여개의 물건을 배송하지만 떨어지는 돈은 매월 150만원 남짓이다.

김씨는 26일 "내 몫을 다 처리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사람이 떠맡아야 하기 때문에 늦은 밤까지 일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당일에 부여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재교육을 받아야 하고, 미배송으로 인한 민원이 4회 이상 접수될 경우 자동으로 우체국과의 근로계약이 파기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씨는 항상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피곤한 상태에서 일을 계속하니 사고도 잦다. 차량 간 접촉사고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눈길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고 움직이다 다리에 금이 갔다. 하지만 계약직인 김씨는 산재보험 대상자가 아니다. 김씨는 식비나 기름값 등 차량유지비도 모두 스스로 부담하고 있다.

운송업체에서 택배기사에게 전가하는 책임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배송 과정에서 물건에 파손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배상책임도 택배기사가 져야 한다. 근로계약서상에는 책임부분에 대한 명시가 전혀 없지만 재계약을 빌미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사설 택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택배기사 조모씨(40)는 "이 일을 시작한 지 8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물어준 돈을 합치면 300만~400만원 정도 된다"며 "안전하게 배송했고, 겉포장에는 이상이 없는 데도 물건에 파손이 있다며 신고가 들어오면 회사는 우리에게 변상책임을 묻는다"고 말했다.

조씨는 "일일이 물건을 뜯어서 상태를 확인한 뒤에 배송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 회사에 항의를 해도 당신이 안 깼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되묻는다"며 "괜히 더 이상 문제를 일으켰다가는 재계약을 해주지 않을까봐 그냥 물건값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

택배기사들은 이미 배송한 물건이 경비실의 보관 과정에서 분실돼도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 택배회사는 수취인 부재로 경비실 등에 맡긴 물건이 분실됐을 경우까지 택배기사가 전액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경비의 관리소홀로 인한 분실이 의심돼도 이를 입증하고 책임을 따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기사들은 택배회사 간 과열경쟁으로 터무니없는 금액에 배송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택배회사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을 악용해 거래업체가 건당 택배운송비용을 터무니없이 낮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은 물건을 원가에 가깝게 팔아넘기는 대신 택배비를 소비자에게 청구하거나, 건당 처리 단가를 낮춰 이윤을 남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후발업체들이 많이 들어서 경쟁이 심화된 부분이 있지만 업체들도 단가인상을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파손 및 분실을 기사에게 보상하게 하는 부분에 대해 "택배기사들이 체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흔들어서 소리를 들어보게 한다든지 등의 확인을 하게 하는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며 "받아서는 안되는 물품을 고객이 배송물로 부쳤을 경우에는 기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