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네질도 제냐는 바로 그런 매력을 갖춘 브랜드다. 처음 제냐의 제품을 접했을 때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크(chic)한 느낌의 선이 흐르는 제냐의 수트는 지적이면서도 우아한 두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단정한 클래식과 자유로운 캐주얼의 조화에 무너지지 않는 카리스마까지 서로 다른 개념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는 게 아닌가.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더불어 세계 최고급 남성복의 양대 브랜드로 꼽히는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연간 200만m의 원단과 50만 벌의 신사복과 셔츠, 그리고 250만여 개의 타이를 생산하고 있다. 신사복 한 벌의 가격은 200만 ~300만 원대로 꽤 비싼 양복이다. 그러나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남성복 최고의 명품으로 자리 잡은 것은 비싼 가격 때문이 아니라 투철한 장인정신에서 비롯되었다.
흔히 ‘제냐’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브랜드는 100여 년 전인 창업 당시부터 ‘최고의 품질이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기업철학을 모토로 삼아 왔다. 장인의 손맛을 그대로 살린 정교한 테일러링과 최첨단 기술력으로 완벽한 라인을 창조하는 제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착용감’을 자랑한다.
제냐는 원자재, 즉 원단에서부터 완제품 생산은 물론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본사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특징. 이러한 수직통합체계가 다른 기업으로부터 원단을 사서 쓰는 타 브랜드로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경쟁력인 셈이다.
제냐는 창업주로부터 4대를 이어 온 현재까지 ‘좋은 원료를 써야 좋은 제품이 나온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양복감의 중요한 소재인 울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 제냐는 매년 그해 최고의 울을 선정해 상을 주고 있다. 이렇게 철저한 품질관리 덕분에 오늘날 세계 유명 브랜드라면 당연히 제냐의 원단을 사용한다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제냐의 창업자인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사업 발전 이외에 소원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환경 보전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1930년대부터 이탈리아 트리베로 공장 주변의 민둥산에 50만 그루의 침엽수를 심고 등산로를 닦아 자연공원으로 만들었다.
제냐가 환경보호에 앞장선 데에는 수질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섬유업체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 좋은 물이기 때문. 울을 씻어 내고 염색하고 마지막으로 직물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수질에 따라 원단의 질이 달라진다고 한다.
제냐는 환경에 대한 투자 외에도 1920년대부터 원단 공장 근로자들과 공장 인근 주민들을 위해 병원, 학교, 레저 시설 등을 갖춘 ‘제냐 센터’를 세우는 등 사회복지에도 힘썼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공장 부근에 대규모의 고아원을 지어 전쟁고아들을 수용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고유의 철학과 신념을 고수하며 브랜드 이익을 대중과 공유해 온 제냐는 그야말로 멋진 영혼을 지닌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패션 감각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던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 “신사의 옷은 남자가 가져야 하는, 그리고 대대로 계승되는 힘의 상징”이라던 그의 얘기는 어쩌면 명품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두고 한 말일지도 모른다